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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정여울 산문집, 마흔에 관하여 북 리뷰

  저는 이제 겨우 서른 초반의 나이지만, [마흔에 관하여]라는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이건 제가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느꼈습니다. 20대에는 20대에 관한 책을, 30대에는 30대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서른이라는 나이를 맞이하고 보니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졌기 때문입니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주는 막연한 두려움에 앞서 그때를 대비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었기 때문일까요. 스스로 느끼기에 나는 아직도 아이 같은데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 덜컥 마흔이 되어버리는 것, 이러한 막연함 조차 두려워져서 마흔이라는 나이에 대해 미리 간접 경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작가 정여울은 제가 잘 아는 작가는 아니었습니다. 검색을 해보니 작품도 많고 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하는 분이시더라구요. '자신의 상처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드러내며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가'라는 소개는 그녀를 아주 잘 표현하는 문장인 것 같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솔직하고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고 그것을 통해서 저는 공감했고 또 위로받았습니다.

  좋은 구절이 아주 많았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좋은 구절이란, 문장적으로 잘 쓰인 글 보다는 제 마음에 와 닿는 구절, 공감되는 구절, 짧지만 위로받는 구절입니다. 막연하고 모호하게만 느끼는 나의 감정을 정제된 글을 통해서 누군가가 시원하게 긁어주는 느낌, 그 느낌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게 와 닿았던 몇 문장을 소개합니다.

  거절은 한 편으로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인 선택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그것으로 인해 누릴 수 있는 편안함과 익숙함을 버려야만 하는, 쓰라린 상실감과의 대면이기도 하다. 그 상실감을 이겨내고 나니 비로소 내가 그 뼈아픈 거절을 통해 얻은 '한 줌의 찬란한 자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그건 단지 한 줌의 자유가 아니라 내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다.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된 느낌이었다. 연애나 인간관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의 삶, 그 자체'로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눈부신 출발점에 다시 서는 것이었다.   정여울, 마흔에 관하여 중.


어쩌면 우리의 내면에도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내면을 돌보지 못한 우리 현대인의 삶은 '외적으로 특별해 보이기', '남들보다 뛰어나 보이기'에 골몰하느라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자신의 마음을 쓰다듬는 일에 손을 놓아버린 것은 아닐까. ㅡ중략ㅡ 더 뛰어나고 싶고, 더 대단해지고 싶은 '사회화의 열망'을 절제하고, 더욱 내면으로, 더 깊은 나 자신의 무의식 속으로 침잠하는 삶에 열정을 느끼게 된 것이다. 나는 이제 그만 사회화되고 싶다.   정여울, 마흔에 관하여 중.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해서 나의 존재를 확인받는 것이 아닌, 오롯이 나 혼자서 설 수 있는 용기. 마흔이 되면 이런 용기가 생길까요? 항상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안심하는, 그리고 외부의 평가나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 제게 큰 위로가 되었던 구절입니다. 스스로 중심을 잡고 올곧게 서있는 훈련을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느리게 다가올 마흔에는 더욱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작가는 스스로를 '마음으로 붙잡지 않으면 자칫 스쳐 지나가 버릴 모든 감정과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녀의 글 덕분에 저도 제 마음에서 놓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