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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기분 좋은 술 냄새가 나는 책 [아무튼, 술] (feat. 아무튼 시리즈)

  서점 구경을 갔다가 몇 년 전부터 '아무튼 XXX'라는 제목이 자주 나오는 걸 보고 아~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의 책이구나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차고 넘치는 에세이들이요. 이게 시리즈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죠(ㅎㅎ)

  예스24 북클럽 회원인 저는 오늘도 이북 리더기에 어떤 책을 담아볼까 고민하다가 [아무튼, 술]이라는 제목을 발견했습니다. 제목만 보고선 술의 종류나 마시는 법 등을 알려주는 책인가 생각했어요. 사전 정보가 아예 없었어요.

  책장을 열어보니 이게 웬걸, 에세이더군요. 이 책의 저자인 김 혼비(필명)씨는 술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술' 자체에 대한 책이 아니라 그가 경험한 술에 관한 '에피소드'로 집필한 책입니다.

나에게는 어떤 대상을 말도 안 되게 좋아하면 그 마음이 감당이 잘 안 돼서 살짝 딴청을 피우는, 그리 좋다고는 하지 못할 습관이 있다. 말도 안 되게 좋아하다 보면 지나치게 진지해지고 끈적해지는 마음이 겸연쩍어 애써 별것 아닌 척한다. 정성을 다해 그리던 그림을 누가 관심 가지고 살펴보면 괜히 아무 색깔 크레파스나 들어 그림 위에 회오리 모양의 낙서를 마구 해서 별것 아닌 것처럼 만들던 여섯 살 적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다. 말도 안 되게 좋아하는 걸 말이 되게 해 보려고 이런저런 갖다 붙일 이유들을 뒤적이기도 한다. 그래서 술을 좋아하는 것 같다. 술은 나를 좀 더 단순하고 정직하게 만든다. 딴청 피우지 않게, 별것 아닌 척하지 않게, 말이 안 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채로 받아들이고 들이밀 수 있게. _「프롤로그」 (인터넷 교보문고)

  어떻습니까. 이 프롤로그만 읽어봐도 저자가 술을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었어요. 그가 그린 술에 대한 단상이 궁금해져서 책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마음이 넘쳐나는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어디선가 술 냄새가 솔솔 올라오는 듯했습니다. 간결하고 재치 있는 문장으로 에피소드를 술술 풀어가는 매력에 푹 빠져서 한 시간도 안되어 책 장을 덮을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현실 웃음이 터진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대목에선 코미디 책 저리 가라 더군요.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술과 함께한 저자의 삶이 담담히 묻어 나와 진지해지기도 합니다.

신나서 술잔에 술을 따르는 순간 다음 날 숙취로 머리가 지끈지끈할 가능성이 열리듯이, 문을 닫으면 어딘가의 다른 문이 항상 열린다. 완전히 '닫는다'는 인생에 잘 없다 -중략- 삶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지만 하지 않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니까. 
「술이 인생을 바꾼 순간」

  읽다 보면 술을 마신다는 게 이리도 철학적인(?) 일이었나 싶어 지기도 하고 술에 대한 저자의 시선이 신선하기도 해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추천합니다!